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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소서준 작성일26-09-26 07:14 조회1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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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를린에서 활동하는 한국 작가 지븨 리(Jeewi Lee)가 ‘GASAG Art Prize 2026’ 수상자로 선정된 데 이어, 베를린 주립 현대미술관(Berlinische Galerie)에서 개인전 《Residual Memories(남겨진 기억들)》를 연다. 전시는 베를린 아트 위크 기간인 9월 11일 개막해 2027년 4월 5일까지 이어진다. GASAG Art Prize는 예술·과학·기술의 접.을 지향하며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동시대 예술가에게 수여하는 상으로, 수상자는 베를린 주립 현대미술관에서 전시를 개최하게 된다. 이번 전시에서 지븨 리는 ‘모래’라는 물질을 중심으로 회화·설치·사운드를 아우르며, 그 안에 응축된 시간과 장소의 흔적을 다층적 감각으로 풀어낸다. 지븨 리. / © Ecaterina-Rusu 지븨 리의 예술적 실천은 자취를 쫓는 일에서 시작한다. 그는 이미 사라졌거나 쉽게 지나칠 수 있는 물질과 표면에 남겨진 흔적을 출발.으로 삼아, 그것이 무엇을 담고 있는지 살핀다. 한지를 비롯해 흙과 모래 같은 물질은 그의 작업에서 단순한 매체가 아니라 오랜 시간을 경유하며 기억을 간직한 존재이다. 작가의 할아버지 댁에서 가져온 한지 벽지를 설치로 변환한 〈Reproach〉(2021)나, DMZ 인근에서 인간의 역사를 목격해온 나무 표면을 탁본한 〈09_38°0’0“N - 127°55’55“E(Punkt3)〉(2018) 같은 이전 작업에서 이러한 관심을 확인할 수 있다. 물질에 남겨진 흔적은 추상적으로 시각화되어, 그것이 지나온 시간과 장소,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상상하게 하는 단서가 된다.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 작가의 시선은 ‘모래’라는 작고 흔한 물질로 향한다. 모래는 익숙한 만큼 오히려 눈에 잘 띄지 않는 물질이다. 콘크리트와 유리, 반도체, 정수 필터 등 현대 문명의 기반을 이루는 산업 자원이지만, 흔하면서 작고 가벼워 거의 가치 없는 것처럼 지나쳐진다. 또한 모래는 수백만 년에 걸친 지질학적 과정의 산물이기도 하다. 세계 각지의 모래는 서로 다른 색과 결을 가지며, 같은 모래라도 생성된 환경과 이동 과정에 따라 다른 성질을 가진다. 일례로, 사막 모래는 건설에 적합하지 않아 중동의 산유국들은 대규모 건설을 위해 오히려 모래를 수입하기도 한다. 온라인바둑이 한편 전 세계 모래 소비량은 연간 500억 톤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며, 채굴을 둘러싼 경쟁은 불법 채취와 지역 갈등, 해안 생태계 파괴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모래는 극도로 긴 지질학적 시간과 매우 빠른 산업적 시간을 동시에 품는다. 지븨 리는 바로 이 같은 이중성과 모순을 지닌 물질에 남겨진 시공간의 밀도를 들여다본다. 지븨 리 '남겨진 기억들' 전시 전경(2026). / © Jeewi Lee & Phillip C. Reiner, Photo by Roman März 2022년부터 이어온 연작 〈Field of Fragments〉는 그 출발.을 보여준다. 멀리서 보면 마(麻)를 사용한 단색화 혹은 색면 회화를 연상시키는 이 연작은 단순한 형태와 넓은 색면, 절제된 구성으로 회화의 전통과 공명한다. 그러나 전통적 회화와 달리 이 연작에서 색은 작가가 선택하거나 혼합한 안료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가 일정 기간 머물렀던 여러 해안 지역에서 직접 채집한 모래가 화면을 이루고, 각각의 색은 그 장소가 지닌 자연의 색에서 비롯된다. 같은 지역에서 채집한 모래조차 서로 다른 농담을 보인다. 그렇기에 〈Field of Fragments〉의 화면은 회화처럼 보이면서도 기존 회화의 방식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색은 선택된 것이라기보다 발견된 것이고, 화면은 상상된 풍경이 아니라 특정 장소에서 가져온 물질의 집합이다. 작가는 지질학적 시간을 간직한 재료로 화면을 구성하면서, 자신의 개인적 시간과 자연의 시간을 중첩시킨다. 회화의 표면은 하나의 장소에 대한 물질적 기록이 된다. 평면에서 시작된 작가의 모래에 대한 관심은 2024년부터 건축가이자 기하학 연구자인 필립 라이너(Phillip C. Reiner)와의 협업을 통해 입체적으로 확장된다. 두 사람은 나노 컴퓨터 단층 촬영을 이용해 모래 한 알을 스캔하고, 육안으로 볼 수 없는 내부 구조를 디지털 데이터로 변환한 뒤 특수 프린팅 기술을 이용해 최대 3,000배까지 확대한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릴 정도로 작은 모래알은 이 과정을 거치며 암석이나 바위처럼 거대한 조각으로 변한다. 보이지 않던 내부 구조가 비로소 하나의 공간적 경험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지븨 리, , 2024. / © Jeewi Lee & Phillip C. 릴게임골드몽게임 Reiner, Photo by Christopher Häring 위 작품의 상세 이미지. / © Jeewi Lee & Phillip C. Reiner, Photo by Christopher Häring 라이너와의 협업은 이번 전시의 또 다른 작업에서 모래알 단면을 확대해 그 내부의 구성을 시각화하는 방향으로도 이어진다. 그의 관심은 ‘무엇으로 보이는가’에서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로 이동하고, 각각의 모래알이 서로 다른 시간과 물질이 결합된 복합적인 구조임을 사진과 영상 작업으로 보여준다. 흔적을 추적하던 작가의 작업은 그 흔적이 발생한 조건 자체를 탐구하는 데까지 나아간다. 지븨 리, , 2026. / © Jeewi Lee & Phillip C. Reine 이처럼 미시적 세계를 거대하게 확장하는 접근은 한국의 전통적 수석(壽石)과 서로 다른 방향에서 만난다. 수석이 자연의 풍경을 축소된 형태로 담아 작은 돌 안에서 산과 계곡, 자연을 발견하게 한다면, 지븨 리의 모래알은 극도로 작은 것을 거대하게 확대함으로써 하나의 모래알이 담은 풍경을 관객이 마주하게 한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출발하지만 두 방식 모두 작은 물질에서 풍경을 읽는다는 .에서 맞닿아 있다. 지븨 리 '남겨진 기억들' 전시 전경(2026). / © Jeewi Lee & Phillip C. Reiner, Photo by Roman März 낱낱의 모래알이 품은 시간과 기억을 파고들던 시선은 전시장 전체를 마주하는 순간 다시 한번 방향을 바꾼다. 지븨 리가 각양각색의 모래를 매개로 미술관에 펼쳐 놓은 풍경은 마치 여러 겹의 장소성과 시간, 역사가 뒤섞인 바닷가처럼 보인다. 더불어 공사장에서 사용된 방진막을 활용해 만든, 천장에서부터 마치 파도 물결이 넘실거리듯 설치된 작업은 화이트 큐브 공간을 자연을 떠올리게 하는 공간으로 전이시킨다. 관객은 ‘자연스럽게’ 배치된 구성의 공간을 걸으며, 개별 모래알 내부를 들여다보던 시선을 전시장이라는 더 큰 스케일로 이동시키고, 어느새 자신의 신체 역시 그 풍경의 일부가 되는 경험을 한다. 이러한 풍경은 자연을 재단하거나 통제하는 서양식 정원과 다르게 서로 다른 요소들이 관계를 이루도록 두는 한국 전통 정원의 풍경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릴신천지 특히 외부의 풍경을 정원 안으로 끌어들이는 차경(借景)의 개념을 떠올리면, 전시장에 놓인 모래와 작품들은 완결된 자연을 재현한다기보다 서로 다른 시간과 장소가 촘촘히 엮인 하나의 장면으로 전개된다. 지븨 리 '남겨진 기억들' 전시 전경(2026). / © Jeewi Lee & Phillip C. Reiner, Photo by Roman März 전시는 또 다른 감각을 더하며 풍경을 그저 관조적으로 바라볼 수 없게 한다. 지븨 리가 작곡가 제러드 마이어-클로트(Jared Meier-Klodt)와 협업하여 제작한 60분 길이의 사운드 설치는 전시장의 풍경에 또 다른 층위를 쌓아 올린다. 이들은 모래의 소리를 일상적이고 자연적인 환경에서부터 산업 현장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곳에서 채집하고 이를 재구성했다. 가장 작은 단위로 흩어져 있던 소리는 서로 겹쳐지며 또 하나의 지층을 만든다. 이렇게 쌓인 소리의 층은 전시장에 펼쳐진 풍경을 단순한 자연의 이미지로 읽는 데 균열을 일으킨다. 눈앞의 모래가 지닌 아름다운 색과 질감 뒤에는 그것이 채굴되고 이동하고 소비되는 과정이 있으며, 그 안에는 자원과 산업, 환경과 분쟁의 문제가 얽혀 있다. 사운드는 또 다른 감각을 자극하며 관객이 풍경 속으로 조용히 흡수되기보다 그 이면을 끊임없이 환기하도록 한다. 풍경은 그렇게 하나의 감각에 머물지 않고, 그 안에 담긴 다른 시간과 현실을 불러일으킨다. 전시 '남겨진 기억들'에서 모래는 다양한 시간과 장소의 흔적이 하나의 물질 안에 축적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작가가 머물렀던 해안의 기억, 수백만 년에 걸친 지질학적 과정, 모래를 소비해온 산업의 역사가 한 알의 모래 안에서 교차한다. 이 기억들은 서로 다른 크기와 감각, 다양한 시간의 층위를 드러내며 관객과 마주한다. 지븨 리는 흔적을 채집해 기록하고, 그것을 확대하고, 내부를 들여다보고, 다시 전시장 전체의 풍경으로 구성한다. 그 과정에서 모래 한 알은 하나의 풍경이 되고, 전시장은 다시 수많은 모래알과 시간의 집합이 된다. 작가는 이처럼 흔하고 평범해 보이는 물질을 낯선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며, 우리가 지나쳐온 시간과 장소, 그리고 그 안에 켜켜이 쌓인 기억을 다시 사유하게 한다. 그 풍경은 그래서 그저 편안하게 바라볼 수만은 없다. 무심히 지나쳤던 주위의 사물들을 다시 보게 하며, 그 응시가 결코 순수하게 관조적일 수만은 없다는 사실도 함께 직시하게끔 하기 때문이다. 베를린=변현주 큐레이터 Phillip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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